Fanāʾ
فناء (fanâ)
아랍어 단어로서 *소멸*, *멸절*을 뜻한다. 수피 용어에서는 신성 속으로 분리된 자아가 사라지는 것, 즉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여기던 존재의 소멸을 말한다. *아타르*는 이를 영적 여정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계곡으로 삼았는데, 그 너머로는 나아갈 수 없다 — 나아갈 자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la septième enfin celle de la pauvreté ( facr ) et de l'anéantissement ( fanâ ), vallée au-delà de laquelle on ne peut avancer.
아랍어 어근 f-n-y에서 유래한 말로, « 소멸하다, 존재가 그치다 »를 뜻한다. 파나[fanāʾ]는 허무가 아니다. 수피 전통에서는 거의 언제나 그 반대인 바까[baqāʾ]—자아가 사라지기로 동의했을 때 신 안에 남는 것, 즉 지속되는 것—와 함께 언급된다. 소멸은 종착지가 아니라 문턱이다. 자아가 가리고 있던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자아는 사라질 뿐이다. 아타르[ʿAttâr]의 비유로는, 태양에 녹아들어 빛이 되는 그림자, 혹은 대양이 통과하지 않고 흡수하는 물방울이 있다.
이 말은 길의 특징을 담고 있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분리되어 있던 상태가 끝나는 것이다. 찾는 자가 찾아지는 자를 향해 나아가는 한, 이원성은 유지된다. 파나는 찾는 자가 지워지고, 그와 함께 그가 존재했던 거리도 사라지는 순간이다. 페르시아어의 언어유희가 이를 증명한다—여행의 끝에 다다른 « 서른 마리 새 »[시 모르그, si morg]는 시모르그[Simorg]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읽는다.
시몬 베유의 디크레아시옹과 구분해야 한다. 디크레아시옹 역시 자아를 해체하지만, 신과의 동일시를 거부한다. 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자아를 해체할 뿐, 결코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불교의 아나따[anatta]와도 다르다. 여기에는 소멸시킬 자아도, 녹아들 사랑의 대상도 없다. 다만 어떤 중심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깨달음만이 있을 뿐이다. 파나 ≠ 디크레아시옹, 파나 ≠ 아나따: 자아를 해체하는 세 가지 방식—합일을 향한 길, 물러섬을 향한 길, 혹은 공(空)을 향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