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오물
『담마파다』는 오물 더미에서 순결한 연꽃을 피워 올리고, 장자는 대자연의 도리를 오줌 구덩이까지도 두루 깃들게 한다. 천한 것에서 벗어나거나 그 안에 머무는 것 — 둘 다 버릴 것이 없음을 아는 길이다.
대로 뻗은 큰길 한복판에 오물 더미가 쌓여 있다. 눈길은 스쳐 지나가며 흘깃 보고는 이내 외면한다. 버릴 것, 내쳐야 할 것. 그러나 바로 그, 서둘러 외면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두 전통은 눈을 멈췄다. 하나는 고대 인도의 길에서, 다른 하나는 중국의 땅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이 본 것은.
큰길가에 버려진 오물 더미 한가운데서도 향기로운 연꽃 한 송이가 피어오르듯,
인간의 오물 더미, 눈먼 무리 한가운데서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제자는 찬란히 빛난다.
이 장의 제목은 『꽃』이다. 꽃과 오물이 여기서는 한 치의 틈도 없이 얽혀 있다. 연꽃은 오물 더미 에도 불구하고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피어오른다. 진흙은 연꽃이 수분을 빨아올리는 토양이며, 꽃이 피어오를 수 있는 조건 그 자체다. 그러나 연꽃의 영광은 그 진흙을 조금도 품지 않는 데 있다. 향기로운 채 우뚝 솟아오르며, 자신을 키워낸 썩은 흙을 조금도 더럽히지 않는다. 귀한 것이 천한 것에서 솟아오르며, 그 천한 것을 붙들지 않은 덕에 귀한 것이다.
『담마파다』가 제시하는 깨달음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깨끗한 태생을 가진 자만을 위한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허망해 보이는 바로 그 한가운데서 눈먼 무리 한복판에서 번득이는 광명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는 인간의 오물을 피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빛난다. 그리고 오물을 꿰뚫고 나아가는 방식은 마치 벌과도 같다.
벌이 꽃의 색과 향기를 해치지 않고 오직 꿀만 취하듯, 마을 한가운데서 묵인(默人)도 그래야 한다.
꽃을 상하지 않게 꿀만 취하고,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더럽히지 않는 것. 그 몸짓은 하나다. 지혜는 여기서 정화한다. 불순한 것 위에서 순수한 것을 가려내고, 그 위에서 솟아오른다.
도가(道家)는 도리를 어디에 두는가?
어디에나, 그리고 위계 없이. 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이에게 장자는 이렇게 답한다. 개미에게도, 그보다 더 아래 풀잎에도, 기왓조각에도, 오물에도, 오줌 구덩이에도. 도리는 고귀한 것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다. 가장 천한 것에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위계도 거리도 없다.
— 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 어디에나 있습니다. — 예를 들면요? — 이 개미에게도 있습니다. — 더 아래는요? — 이 풀잎에도 있습니다. — 더 아래는요? — 이 기왓조각에도 있습니다. — 더 아래는요? — 이 오물, 이 오줌 구덩이에도 있습니다.
대화는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동곽자가 매번 “더 아래는요?” 묻는 것은 장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도리가 더 이상 깃들 수 없는 바닥을 찾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바닥은 없다. 그리고 장자가 거부하는 것은 바로 그 질문 자체다.
도리가 여기에 있는지 저기에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도리는 만물에 두루 깃들어 있습니다.
“더 아래는요?”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시각이다. 시장에서 돼지의 살을 발로 눌러 기름기를 가늠하는 전문가처럼, 장자는 도리를 위계로 재려 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도리가 어디에 더 많이, 어디에 더 적게 깃들어 있다고 묻는 것은 이미 그릇된 전제다. 만물에 고루 깃든 도리에는 정점도 바닥도 없다. 도(道)는 세상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 그 자체다. 별에도, 오줌 구덩이에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두 이미지를 함부로 하나로 엮는 것은 게으른 일이다. 『담마파다』의 연꽃은 오물 속에서 피어오르지만, 거기서 벗어나 솟아오른다. 연꽃은 오름을 통해 가치를 얻고, 오물은 그저 토양일 뿐이다. 반면 장자의 도리는 솟아오르지 않는다. 그 자체가 오물이며, 개미와 동등하다. 하나는 정화하며 솟아오르고, 다른 하나는 평등하게 머문다. 두 방향은 정반대다. 정화하며 오르느냐, 아니면 천한 것을 천하게 여기지 않느냐.
그러나 두 시선은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오물 더미 앞에서 그것을 그저 버릴 것, 쓸모없는 것, 폐기물로만 보는 반사적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서둘러 외면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두 전통은 본질이 작용하는 모습을 본다. 『담마파다』에게는 꽃이 피어오를 수 있는 토양이며, 장자에게는 도리가 고스란히 깃든 완전한 현존이다. 천한 것에서 벗어나 깨끗이 오르든, 아니면 그 안에 평등하게 머무르든, 두 길은 결국 한 곳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아무것도 버릴 것으로 여기지 않는 시선으로. 버릴 것이라 여겼던 바로 그곳에 귀한 것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시선으로.
오물 더미는 여전히 큰길가에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스쳐 지나가는 눈길뿐이다.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는다.
인용된 출처
- Bouddha (attrib.), Dhammapada, 판. Bibliothèque orientale elzévirienne XXI, Ernest Leroux, 1878 (Wikisource), 번역. Fernand Hû.
- Tchouang-Tseu, Œuvre de Tchoang-tzeu, 판. Les Pères du système taoïste, Imprimerie de Hien-hien, 1913 (Wikisource), 번역. Léon Wie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