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enir-nègre du monde
아킬레 음벰베가 제시한 진단: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하에서, 한때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에게만 국한되었던 조건—사물로, 상품으로, 교체 가능한 몸으로 변모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이제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전체로 확산된다. «*흑인*»은 곧 보편화된 하나의 조건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즉, 자본의 필요에 따라 대체 가능하고, 용해되고, 착취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음벰베는 이러한 움직임을 세계의 *흑인화*라고 명명한다. 이는 인종적 범주가 아니며 단순한 은유도 아니다. 노예들이 먼저 겪었던 경험을 보편화하는 경제 논리의 분석이다.
C'est cette fongibilité nouvelle, cette solubilité, son institutionnalisation en tant que nouvelle norme d'existence et sa généralisation à l'ensemble de la planète que nous appelons le devenir-nègre du monde.
이 용어는 현재에 맞서 역사를 되돌린다. 아셈바[*Mbembe*]가 상기시키듯, « *네그르*[*Nègre*] »는 발명품이다.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노예 무역과 플랜테이션으로 대표되는 초기 자본주의가 인간을 상품으로 변모시키고, 그들의 미래와 시간을—« 가능성의 두 가지 모체 »—빼앗아간 결과 탄생한 존재다. 따라서 이 단어는 피부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를 이용 가능한 사물로 만드는 *작동*을 의미한다. 아셈바는 바로 이 작동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지구적 차원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움은 단 하나의 단어, 즉 *대체 가능성*[*fongibilité*]에 있다. 대체 가능한 상품은 교환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며, 계산에 녹아든다. 후기 자본주의는 이제 인간—인종이 낙인찍었던 이들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인간—을 디지털 데이터, 코드, 교체 가능한 노동 단위로 취급한다. 한때 특정 집단과 대륙에 국한되었던 *네그르*적 조건은 이제 « 새로운 존재 규범 »으로 자리 잡는다. 아셈바가 *되기*[*devenir*]를 언급하는 이유다. 그것은 획득된 상태가 아니라, 시장이 삶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할수록 그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 논의는 마르크스의 [상품의 물신성](/ko/lexique/fetichisme-marchandise/)—인간 사이의 관계가 사물 사이의 관계로 전도되는 현상—을 급진화하며, 한병철의 [피로사회](/ko/lexique/societe-de-la-fatigue/)가 묘사한 ‘자기 착취를 강요받는 주체’ 진단과 교차한다. 그러나 아셈바는 여기에 노예제의 기억을 덧대며, 자본이 사물화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물화의 *형태*에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은 바로 노예선의 뱃속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진단에 맞서, 사르[*Sarr*]의 [아프로토피아](/ko/lexique/afrotopia/)는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그것은 더 이상 감내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이 끝나는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다.
세계의 *네그르*-화[*devenir-nègre*] ≠ 인종적·생물학적 범주: 아셈바는 이를 오히려 색깔과 분리된 경제적 조건의 이름으로 제시한다. ≠ 단순한 수사적 비유: 그것은 인간을 교체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실제적 논리*를 진단하는 것이다. ≠ 닫힌 운명: 그 과정을 *명명*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 저항할 가능성을 여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