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fati
« 운명의 사랑 ». 니체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에서 *amor fati*는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사위를 던지듯 필연을 긍정하는 것이다. 한 번의 손짓으로 우연을 던지고, 그 결과로 나온 조합이 필연적이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던져진 우연과 결과의 필연은 대립하지 않는다—그것들은 디오니소스적 우연-운명의 짝을 이룬다. 숙명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되지 않은 것까지도 현실을 원하는 것이다.
non pas une combinaison finale désirée, voulue, souhaitée, mais la combinaison fatale, fatale et aimée, l'amor fati
델뢰즈는 amor fati를 주사위 던짐의 이미지로 생각한다. 서투른 도박꾼은 여러 번의 던짐에 베팅하고, 확률을 계산하며, 미리 바라던 ‘이기는’ 조합을 기대한다. 반면 능숙한 도박꾼은 한 번의 던짐으로 모든 우연을 걸고, 나올 숫자—그 무엇이든—를 미리 긍정한다. 전자는 결과를 원하고, 후자는 우연 그 자체를 원하며, 그로부터 필연이 도출되는 것을 사랑한다.
이것이 바로 디오니소스적 우연-필연의 짝이다. 던짐의 우연을 긍정하고, 결과의 필연을 긍정하며, 두 긍정은 하나로 수렴한다. 떨어진 조합은 원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다. 떨어진 그대로 사랑받는다.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의 흥정을 멈추는 것이다.
amor fati는 이렇게 영원회귀를 시험으로 이해하는 것의 연장선에 있다. 영원히 원할 만큼 강하게 원한 것만이 되돌아오며, 진정한 필연의 사랑은 그 필연의 회귀까지 원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니체의 환희—긍정적이며 창조적인—는 이 조화에서 태어나지, 얻어진 만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amor fati는 체념이 아니다. 체념하는 자는 막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원하기를 멈추며 스스로를 달랜다. 반면 amor fati는 원하며, 그 필연이 강할수록 더욱 강하게 원한다. 전자는 운명 앞에서 욕망을 꺼뜨리고, 후자는 그곳에서 욕망을 백열로 불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