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정치의 주체다: 야노마미의 영적 자위

샤피리가 약탈에 맞서는 동맹이 될 때

숲은 정치의 주체다: 야노마미의 영적 자위
올멕 예술가 — 얼굴 (기원전 900–40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숲

아마존의 숲은 배경이 아니다. 다비 코페나와에 따르면, 숲은 살아 있는 몸이며, 나무와 강, 바람 한 점 한 점에 샤피리 영들의 목소리가 깃든 관계의 그물이다. 비전 초월자에게만 보이는 이 존재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들은 행동하고, 보호하며, 무엇보다 저항한다. 산림 벌채나 금 채굴꾼들의 침입으로 인한 그들의 약화는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그것은 야노마미 주권을 직접 겨냥한 공격이다. 다비 코페나와는 단언한다. 숲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을 넘어서는 동맹을 깨는 것이며, 조상 대대로 이어진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라고.

1970년대, 지질 탐사대의 도로와 헬리콥터가 야노마미 영토 깊숙이 침투하던 시절, 한 가지 현실이 드러났다. 백인들은 숲을 자원의 보고, 정복해야 할 공간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야노마미에게 땅의 한 뙈기 한 뙈기는 깨어 있는 힘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샤머니즘의 영인 샤피리는 수동적인 상징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하고, 행동하며, 무엇보다 방어했다. 그들의 역할은 장식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그저 하나의 고리에 불과한 균형의 수호자였다. 숲이 불타고 강이 오염될 때 사라지는 것은 나무나 물고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동맹이자 보호자이며, 침묵하는 목소리들이었다.

다비 코페나와는 이 폭력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야노마미 공동체 간의 전쟁 습격이 엄격한 규칙을 따랐다. 적이 창으로 죽이든 보이지 않는 수단(주술, 공격적 샤머니즘, 동물 분신의 사냥)으로 죽이든, 가해자는 특별한 의식 상태(õnokae)에 들어섰다. 그는 금기를 지켜야 했고, 격리되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상징적으로’ 저지른 폭력을 ‘소화’해야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화가 아니었다. 모든 공격에는, 설령 정당하더라도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숲은 잊지 않는다. 숲은 가해진 상처를 기억하며, 샤피리 영들은 그 흔적을 간직한다.

266 - 전쟁 습격이나 보이지 않는 수단(주술, 공격적 샤머니즘, 동물 분신의 사냥)으로 적을 ‘죽인(먹은)’ 자는 의식적 살인 상태(õnokae)에 들어가 희생자의 피 묻은 살점을 소화해야 한다.

Davi Kopenawa, La Chute du ciel , 책 La Chute du ciel  — 판. 프랑스어 번역본(브뤼스 알베르, 플롱 출판사, 『테르 휴맹』 총서, 2010년)을 근거로 함, 번역. viasophia

이 ‘폭력의 소화’라는 개념은 시적인 비유가 아니다. 세계관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모든 행위는,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파장을 낳는다. 백인들이 기계와 폭약을 들고 야노마미 영토에 침입할 때, 그들은 나무나 동물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영들과 동맹자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들을 죽인다. 다비 코페나와는 이 파괴가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무엇보다 전쟁이다. 샤피리를 향한, 야노마미를 향한, 약탈자의 탐욕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향한 전쟁이다.

숲은 다비 코페나와에게 정치의 주체다. 숲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주권의 공간이다. 샤피리는 민속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완전한 행위자이며, 생존 투쟁의 동맹이다. 산림 벌채나 강의 오염으로 인한 그들의 약화는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그것은 저항의 영적 기반을 공격함으로써 야노마미의 힘을 꺾으려는 전쟁 전략이다.

저항의 영토로서의 숲

다비 코페나와가 말하는 ‘인간의 땅-숲’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이 홀로 결정권을 갖지 않는 공간이다. 샤피리와 동물, 강과 나무가 할 말을 가진다. 지질 탐사대가 야노마미 영토에 폭약이나 연료를 버리고 갈 때, 그것은 물리적 위험에 그치지 않는다. 영들의 영역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들의 공간을 침해하는 행위다. 야노마미는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의 균형에서 각 요소들이 제자리를 지키는 수호자다. 모든 공격은 전쟁 선언이다.

다비 코페나와는 이 전쟁이 물질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상기시킨다. 샤머니즘의 영인 샤피리는 영토 수호에서 적극적인 동맹이다. 숲의 파괴로 인한 그들의 약화는 군사적 패배와 같다. 그들이 없으면 야노마미는 저항의 힘과 능력을 일부 상실한다. 산림 벌채는 단순한 생태적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야노마미의 주권을 영적 기반에서부터 무너뜨리려는 지배 전략이다.

저항의 무기로서의 꿈

다비 코페나와에게 꿈은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다. 샤피리를 만나는 공간이다. 샤먼이 꿈을 꾸면 그의 생명 본질은 영들과 함께 여행하며, 영들은 그에게 진실과 위험, 전략을 드러낸다. 꿈은 무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위협을 미리 이해하며, 침략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수단이다. 기계와 법으로 영토를 침범하는 백인들의 세계에서, 꿈은 저항의 도구가 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약탈자의 의도를 이해하며, 무엇보다 반격에 대비하게 한다.

다비 코페나와는 침략자들이 이 영적 차원을 종종 무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에게 숲은 텅 빈 공간, 자원의 보고일 뿐이다. 그들은 샤피리를 보지 못하고,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파괴가 가져올 결과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나 쓰러지는 나무 한 그루, 오염되는 강 한 줄기는 모두 이 보이지 않는 동맹자들을 향한 공격이다. 그리고 샤피리를 향한 모든 공격은 야노마미 자신에 대한 공격이다.

하늘의 몰락, 경고의 메시지

다비 코페나와가 말하는 ‘하늘의 몰락’은 단순한 종말론적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숲의 파괴가 직접적으로 초래하는 현실이다. 샤피리 영들이 사라지고, 샤먼들이 죽고, 강이 오염될 때, 하늘 자체가 위협받는다. 하늘은 무너질 수 있으며, 그 와중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 생각은 미신이 아니다. 숲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파괴가 세계의 균형을 위협한다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다.

다비 코페나와는 이론가가 아니다. 그는 목격자이며, 행위자이며, 자신의 세계가 약탈자들의 손에 변모하는 모습을 본 샤먼이다. 그의 목소리는 야노마미의 저항이 단순한 땅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라는 호소다. 그것은 영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며,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의 보존을 위한 투쟁이다. 그리고 이 투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인용된 출처

  • Davi Kopenawa, La Chute du ciel, 판. Plon, coll. Terre humaine, 2010, 번역. Bruce Albert (propos yanomami recueillis et traduits).